영영 사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단어 “paradise”(낙원)은 “nowhere”(어디에도 없다)라고 정의되어 있었다. 하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종교적 아이콘을 통해서 낙원을 그려왔다. 서산 용현리에 가면 가야산 절벽에 마애 삼존불상이 있다. 흔히 “백제의 미소”로 유명한 이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4호로 옅은 미소 속에 오래된 친구 같은 다정함이 있다. 마애는 벽에 조각한 것을 의미하고, 과거, 현재, 미래불을 함께 모신 것을 삼존불이라고 칭한다. 백제 사람들은 이 불상들을 보며 안녕과 평안을 빌었고 극락왕생을 꿈꿨다.
나는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, 현재, 미래가 공존하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재해석하고, 어디에도 없는 모든 것을 초월한 “pardise”(낙원)를 “island”(섬)으로 비유하였다. 이 섬을 불교, 기독교, 토속 신앙 등 다양한 종교의 아이콘들을 통해 무언가 바라는 바를 염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하였다. 이 흐름은 나의 대주제인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맞물려있다. Love(사랑)", 하트모양의 얼굴은 나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. 대중 매체에서 쏟아내는 "사랑"은 흔한 무엇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. 나는 추상적 사랑을 형상화하여 증명하고 싶었다. 그래서 불상을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의 모습의 '볼 빨간 얼굴'로 표현하고, 또 여러 개의 하트를 다양한 패턴과 함께 조합하여 장승을 세웠다. 시를 읽고 도자에 필사하여 새겨 넣기도 하였다.
절박한 순간에 기도를 해본 경험은 한 번쯤을 있을 것이다. 하지만 일상 속 삶은 때로는 무기력하여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에 둔감하다. 만약 “Nowhere Island”에 가게 된다면,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저 먹고 eat, 기도 pray하고, 사랑 love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?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, 멀고도 어쩌면 가까운 그곳을 상상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였다.
-2019 한정은-